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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Friends 서포터즈/소감문

[2025] OKFriends 서포터즈(청년) - '정종엽' 수기

질문 1. 서포터즈 지원 동기 및 목표 달성 내용

나는 평생 도미니카와 한국 두 문화가 반반 섞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와 보니 내 안에는 외국의 정서가 더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도미니카에 있을 때는 너무 한국인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국에서는 너무 외국인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특히 한국에 돌아왔을 당시 친구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겉모습은 같지만 속 내용은 다른 책처럼 나와 한국인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외국인스러움이야말로 내가 간직해야 할 소중한 삶의 유산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 배경이 이번 2025 OK Friends 서포터즈 활동을 지원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이번 캠프를 통해 나는 나와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나의 문화적 정체성을 돌아보고자 했다.

캠프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SP 사이에서도 외국에서 자란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서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해외 트렌드와 농담에 함께 웃는 순간 나는 이미 이 캠프에 지원한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이들도 분명 나와 같은 고민을 해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의 문을 더 빨리 열게 해주었다. 특히 CIS 지역 출신의 재외동포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면서도 자신 있게 한국인임을 자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더운 날 한 참가자에게 러시아어로 덥다라는 말을 배우고 곧바로 다른 참가자에게 그 표현을 써보며 함께 웃었던 순간이다. 이후에는 내가 한국어로 덥다를 알려주며 서로 언어를 교환했다. 어설프게 러시아어를 배우고 한국어를 알려주는 과정에서 나는 외국인스러운 한국인으로서의 나 자신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CIS 친구들에게 한국어보다 러시아어가 편하듯 나에게도 한국어보다는 스페인어가 그리고 스페인어보다 영어가 더 편하다. 나와 비슷하게 참가자 대부분은 한국보다 자신이 자란 나라의 정서를 더 많이 품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완벽한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나는 내가 잘하는 언어를 통해 한국을 알릴 수 있었다. 번역을 돕거나 한국에서 지낸 경험을 살려 SP로서 참가자들에게 한국을 소개했다. 저녁에 참가자들과 같은 방에 모여 한국 대학생들이 자주 하는 술 게임을 알려주거나 노래방에서는 한국 또래들이 자주 부르는 노래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이러한 순간들은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그만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역시 내 안에 분명히 존재했다.

결국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한국다움을 덜 가진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자라온 환경의 색이 더 짙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은 나를 오히려 다문화적 감수성을 가진 특별한 한국인으로 만들어준다는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나는 완전히 한국인만은 아니지만 한국인이기도 한 사람이자 동시에 완전히 외국인만은 아니지만 외국인의 정서를 지닌 사람이다. 이번 캠프는 나에게 앞으로 한국인과 해외 출신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었다.

 

질문 2. 서포터즈 활동이 자기 계발에 미친 영향

나는 이번 캠프에서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참가자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친근한 모습과 SP로서 권위를 지켜야 하는 모습이었다. SP는 완전한 참가자도 그렇다고 온전한 스태프도 아닌 독특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해야 했다. 때로는 친구처럼 다가가야 했고 때로는 한발 물러서 통역과 안내, 진행을 책임져야 했다.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은 친구처럼 행동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리더처럼 행동하는 게 더 도움이 될까?” 이렇게 두 역할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나만의 균형점을 찾아 나갔다.

1차에서는 나이 공개의 중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한 참가자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 나이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별생각 없이 내 나이를 밝혔다. 순간 분위기가 싸해진 것을 느꼈다. 이후 다른 SP들로부터 나이를 밝히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참가자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조언을 받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서구권 배경의 참가자들이 많았던 만큼 정말 그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내 방식대로 참가자들과 친구 같은 관계를 이어갔다. 그 결과 나는 SP보다는 참가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통역은 경험 많은 동료 SP들이 주로 맡았고 나는 사진을 패들렛에 올리는 등 비교적 가벼운 역할을 맡았다. 남는 시간에는 참가자들과 어울렸는데 총장님께서 SP는 참가자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신 말이 내 행동을 더욱 참가자답게 만들었다. 그러나 넷째 날 실무자로부터 SP보다는 참가자처럼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스스로도 자각은 하고 있었지만 타인에게 그 말은 들은 순간 나이 공개를 비롯해 관계 설정에서 균형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경험을 통해 단순히 친근하게 어울리는 것보다 상황에 맞춰 선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3차에 이르러 나는 SP로서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조의 SP가 줄어들며 호차에서 영어에 능숙한 사람이 나뿐이었기에 책임감은 더 커졌다. 통역은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참가자들과 교감하려는 마음과 SP로서의 태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 1차 때와 달리 친구 같은 모습은 줄었지만 대신 믿음직한 SP의 이미지를 세울 수 있었다. 나이는 철저히 비밀로 유지했고 실제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참가자들도 끝까지 내가 연장자라고 믿을 정도였다.

이처럼 SP 활동은 단순한 보조 역할이 아니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친근함과 권위라는 상반된 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웠고 그 안에서 대인관계 능력과 책임감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다. 1차에서는 친화력과 소통 능력을, 3차에서는 책임감과 리더십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결국 SP 활동은 새로운 상황을 유연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내게 심어 주었다.

 

질문 3. 가장 보람 있었던 또는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이번 캠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1차 둘째 날 개회식에서 벌어진 일이다. 원래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편이라 가장 먼저 그룹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내려오는 다른 SP 들과 인사를 나누며 내려오는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시간이 지나 홀에는 사람들이 점점 모였지만 우리 조에서 같은 방을 쓰는 남자 참가자 두 명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늦는 줄 알았지만 십 분이 지나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때 실무자가 직접 방에 올라가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SP가 된 지 이틀밖에 안 되었던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 큰 청년들을 굳이 방까지 가서 깨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무자에게 이십 분이 지나도 안 오면 가겠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끝내 내려오지 않아 결국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두드리니 한 명은 신발까지 신고 곧장 나왔지만 다른 한 명은 침대에 누운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그를 흔들며 너 많이 늦었어! 얼른 준비해라고 깨웠다. 곤히 자던 탓에 표정이 멍했지만 옷을 갈아입으려는 눈치였다. 그 순간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주고 싶어 옷을 갈아입으라 하고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그게 가장 큰 실수였다. 십 분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문은 두드렸을 때 문 안에서 분명 발걸음 소리가 났지만 반응은 없었다. 혹시 노크를 못 들었나 싶어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제야 일부러 일어나 초인종 방해 금지 버튼을 눌러 나를 따돌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단순히 참가자로서의 신뢰뿐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믿음마저 무너졌다. 배신감이 밀려왔다.

어쩔 줄 몰라 서성이다가 복도에 계시던 청소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사정을 설명했다. 다행히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주셨다. 캄캄한 방에 들어가 보니 그는 여전히 태연하게 이불을 덮고 있었다. 나는 단호하게 이불을 걷어내며 지금 당장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결국 그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따라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화를 꾹 참고 조용히 물었다. “왜 그런 거야?” 그는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른 일정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 말에 화는 조금 누그러졌다. 일부러 나를 곤란하게 하려던 게 아니라 단지 시차 적응이 힘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잘못은 내가 아닌데도 실무자의 꾸중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참가자를 믿고 문을 닫은 내 선택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실무자는 내가 SP로서 미숙하다고 여겼고 나는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마지막 날 폐회식이 끝난 뒤 나는 더 이상 앙금을 남기고 싶지 않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방해 금지 버튼 눌렀을 땐 진짜 너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러자 그는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나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줬는지 미처 몰랐다고 했다. 그 순간 묘하게 쌓였던 감정이 풀렸다. 돌이켜보면 그 참가자는 내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그 일을 계기로 더 단호하고 책임감 있는 SP가 될 수 있었다. 이후로는 참가자 전원이 준비를 마쳤는지 반드시 확인한 뒤에 함께 이동했다. 당시에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나를 성장시킨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