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21살,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입니다. 일상 속에서는 일본어를 말하고, 일본 문화에 익숙하면서도 집에서는 한국어가 난무하여 부모님으로부터 한국의 역사와 가치관을 배워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나는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라는 물음이 마음속에서 정립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OKF 한국 여행은 그 물음의 답을 찾는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했을 때 그 답은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내를 거닐자 잔디밭의 선명한 녹음과 한여름 태양에 비추어진 하늘의 푸르름이 시야 가득 펼쳐져 있었습니다. 매미 소리와 나무를 흔드는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이곳이 관광지라기보다는 하나의 '기도의 장'임을 강하게 느끼게 했습니다. 그 안쪽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비석이 서 있었습니다. 겉면에는 영어로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In memory of those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forces who gave their lives in the Korean War 1950–1953」
라고 기록되어 있고, 양 옆에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의 부조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얀 돌은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고, 그 밝기 속에 과거의 무게감이 조용히 살아 숨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묵념이 시작되어 흰 꽃을 한 송이씩 비 앞에 바치고 갔습니다. 정적 속에 꽃잎의 흰색과 비의 흰색이 겹쳐지고, 이 고운 흰색이 다른 색으로 물들지 않을 것 같은 평화, 거기에 담긴 기도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저에게 있어서, 이처럼 나라 전체에서 전쟁 희생자를 애도하는 장면에 직접 입회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일상에서도 전쟁을 둘러싼 기억은 어딘가 멀고 만지기 어려운 공기에 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공간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감사와 추모를 표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가슴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이 비석 앞에 선 순간 저는 생각했어요.
나는 분명히 이 역사의 연장선상에 살고 있다고.
일본에서 살면서 한국인임을 말할 때 주위의 반응에 망설임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때로는 한국인인 자신을 억누르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느낀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석은 그런 흔들리는 제 등을 밀어준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긍지를 가져도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전쟁의 황폐화를 딛고 일어선 한국은 이제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문화와 기술에서도 존재감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이 비에 새겨진 사람들의 희생과 그것을 사랑과 감사로 기억하는 국민의 자세가 있습니다. 그 역사의 일부에 자신도 연결돼 있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되살아났습니다.
햇빛이 비석을 비추고 그 그림자가 잔디 위에 선명하게 떨어지는 가운데 나는 조용히 손을 모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이 나라만의 '기억의 장'에 몸을 담음으로써 제 안의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는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일본과 한국, 그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던 나의 정체성이 이 순간 신기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그 마음을 가슴에 품고 일본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본 소감문은 참가자의 소감문을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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